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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MKYU 북드라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_ 이정하

by 앤쏭 2020. 2. 7.

정말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 보았다.

한 권 내내 가슴 아픈 사랑을 노래한 시집. 읽어 보면서 참 아름답고 가슴이 아팠지만 답답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떤 사랑을 했기에 이렇듯 슬프고 절절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상황이기에 이토록 사랑하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건지...'

그리고 내 사랑을 떠올려 보았다. '난 이렇게 진실하면서 슬픈 사랑을 해보았는지....'

음..... 나에게는 없었던 거 같다. 그때의 내가 좋은 사랑, 깊은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좋은 사람을 알아볼 눈도 없었고 진실한 대화를 하는 법도, 내 감정을 제대로 전하는 법도 몰랐다. 상대에게 아픔을 주고 나도 상처를 받다가, 관계의 피곤함이 느껴지면 사랑을 정리하고는 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저렇게 절절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시인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저렇게 희생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리고 감사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내게 꽃처럼 예쁜 사람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것에. 나의 변덕에 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는 것에. 우리 남편은 정말 나에게 '가랑비' 같이 깊게 스며들고 있는 고마운 사람이다. 나의 상처를 많이 치유해주고 항상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남편. 시집을 읽다가 우리 남편을 떠올렸던 시를 한편 적어 본다.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이 책은 '시'와 그 시를 쓴 이유를 담은 작가의 '에필로그'가 함께 담겨있다. 독자의 생각으로 시를 해석하는 것도 좋지만, 시인의 생각을 들어보면, 그 시를 읽는 감동의 깊이가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다. 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을 볼 줄 아는 깊이가 달라 시를 쓰는 것이고, 그래서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그렇게 시를 읽다가 내 마음에 다가와 눈물바다를 만든 시가 있다.

바로 '눈 오는 날' 이었다. 그 시와 함께 이정하 시인의 에필로그가 아닌 나의 에필로그를 적어본다.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 나의 에필로그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하던 친구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명동에 나가자던 친구가 있었다.

남자 친구도 있던 내 친구는 그 예쁜 날들에 나를 꼭 불러내었다.
바보 같은 아픔에 한없이 갇혀 있던, 20代 그 시절 나는
친구의 밝음이 부담되어 그 만남을 거절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 섭섭하게 여기다가도 변함없이 연락해주고 보고파하던 내 친구.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다며, 맛집을 알아냈다며
계절이 너무 예쁘니 함께 여행을 가자며
너무 편한 바지를 사서, 네 것도 다시 하나 샀다며
스파게티를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해주고 싶다며

그렇게 예쁜 이유들로 나를 만나자고 하던 내 친구.
'지금은 하늘에서 누구랑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니?'

이제는 내가 먼저 만나자 조르고 싶은데
이제는 나의 특별한 날에 꼭 함께 하고픈 너인데

이렇게 연락할 수도 볼 수도 없구나....

다정했던 내 친구야..
네가 내게 준 사랑이 너무 순수하고 예쁘고 고마워서
그 마음을 자주 부담스러워하던 그때의 내가 너무 미워서
나는 이렇게 자주 아프고 눈물이 난단다...

특히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은 날은 말이야....
'첫눈이 와 친구야' 하는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추운 날 나에게 분홍 장갑 한 짝 벗어주고 잡았던
너의 작고 귀여운 손을 다시 잡아보고 싶어서.

밝은 것을 사랑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못난 친구를
이해해주고 용서해 주겠니?

많이 보고싶고, 영원히 사랑한다 친구야......

<암으로 투병하다 너무도 빨리 하늘로 가버린 친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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