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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by 앤쏭 2020. 2. 27.

요즘 책을 낸다는 것이 많이 전보다는 많이 쉬워졌다.

예전에는 특별한 사람만이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유명 작가, 학식이 풍부한 사람, 전문가 등 성공한 사람들이 책을 썼고, 출판사도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컨텐츠만 확실하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을 출간할 수 있다. 개인적인 취미 생활도 좋은 콘텐츠가 많이 쌓이고, 영향력과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책으로 출판된다.

서점에 가면 초보 작가들이 쓴 톡톡 튀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읽어보면 참 쉽고 일상적인 내용이 많다. 부러움에 나도 잠시 꿈을 꾸어 본다. 내가 쓴 책이 서점의 진열대에 놓여 있는 장면을....

그러다 꿈이 확 깨는 순간이 온다. 글을 써보려 한자 한 자 쥐어짜는 순간에 말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어려워 헤매는 순간, 낮잠 잘 때 잠시 왔던 꿈처럼 홀라당~ 깨버린다. ㅎㅎ '책 한 권이 그냥 나오겠어? 그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숨어 있었겠어?'

꿈만 꾸지 말고 노력을 해보자.

해서...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샀다. 유튜브 대학 강사님이시기도 한 글쓰기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의 최신작.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소제목은 '양생과 구도, 그리고 밥벌이로서의 글쓰기'이다.

제목이 다 했다. 고미숙 선생님이 말씀하시려는 글쓰기에 대해 말이다. 모든 것이 좋고, 돈까지 나오는 글쓰기. 너무나도 갖고 싶은 최상의 기술.

하늘 아래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 

첫째로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진리를 배워서 성인이 펼쳐놓은 깊고도 미묘한 비밀을 들여다본다. 
둘째로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별하여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한다. 
셋째로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내어 작가들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한 비밀을 캐내다.

[...]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세 가지 통쾌한 일이다. (안대회, 「정조세치어록」, 푸르메, 2011, 21~22쪽)

요즘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재미 있는 책들이 많은데 그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세월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 권 또 한 권 읽을수록 작게나마 견문이 넓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너무 무지하게 살았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나는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난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모두 만날 수 있다. 과거의 반성과 현재의 깨달음 미래의 나아갈 길을 모두 만나는 것이다. 

정조의 말처럼 첫째로 작가가 한권의 책으로 펼쳐놓은 깊고도 미묘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둘째로 그 책이 나에게로 와서 널리 인용되어 밝게 분별시키고 나의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하여 준다. 정말 내가 좋은 책을 읽을 때 느끼는, 나에게도 딱 들어맞는 문장이다.

마지막, 세째의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그런 글쓰기 능력을 갖는다면 작가들의 동산에서 거니는 기분뿐일까? 새처럼 날아다니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는 심정일 것 같다.

 

 

이 책은 1부 이론편과 2부 실전 편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이론 편에서는 글쓰기의 존재론을 다루었다. 사람은 왜 쓰는가? 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본성과 쓰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의 글쓰기 원리에 대한 통찰을 다루었다. 

2부 실전편은 그동안 <감이당>에서 수행했던 '글쓰기 특강'을 간략하게 압축한 녹취록이다. 칼럼, 리뷰, 에세이, 여행기 4가지 예시를 다루었다. 그중 리뷰, 에세이, 여행기는 일반인들이 자주 쓰는 글쓰기 형식이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전 편 중에서 '리뷰 쓰기'를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고미숙 선생님이 권하는 리뷰 쓰기는 굉장히 밀도 있는 글쓰기이다. 책을 한번 읽어서는 당연히 쓸 수 없다. 선생님은 최소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승전결의 차서도 배열해보고, 소제목도 붙이면서 써보라는 것이다. 전체의 내용은 대략 3800자가 되게 한다. 

물론 강의에서 '고전'을 다루기에 리뷰를 쓰는 무게감이 조금 더 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글쓰기 초보 단계인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지는 리뷰쓰기였다. 리뷰를 매번 그런 깊이감으로 쓴다면 책을 한 달에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하지만 '매 번 저런 리뷰 쓰기를 한다면 글을 쓰는 실력은 정말 많이 늘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다독의 욕심과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리뷰까지 출산(?)하는 독서 중 어떤 길이 나에게 옳을까?

아직은 초보 독서가인 단계로 다독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후에는 글쓰기에 더 치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책이 나에게 많이 들어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그것을 분출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리뷰란 일종의, '마주침의 유물론'을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 속에서 자신에 대해 엄청 많이 알게 돼요. 잘 따져보면 책에 담긴 내용이 다 나에 대한 것이에요. 나랑 무관한 건 하나도 없죠. 그걸 느끼게 되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길이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닫게 되죠.


리뷰는 독후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이에요. 원책, 원작품에 붙어 있는 부록이나 이런 게 아니고 전혀 별개의 창조물인 겁니다. 물론 원 텍스트에 대한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고전을 읽는 나의 태도와 감응력을 표현하는 겁니다. 내가 이 책과 어떻게 만났는가, 만나서 신체가 어떻게 변용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거예요.

'새로운 창조물'을 써야 하는 리뷰. 내가 요즘 주로 하는 글쓰기인 리뷰가 새로운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책을 설명하고 그 책에서 느낀 점을 위주로 써왔던 리뷰의 방향성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살아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목차를 미리 써보고 중심선이 살아 흐르는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창조물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이 진실로 투영된 글이어야 한다는 것. 책을 읽고 나를 통해 내오는 창조물을 만들어 낼 때 고미숙 선생님이 그토록 전하고 싶은 '거룩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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