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서평>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by 앤쏭 2019. 9. 24.

<나의 죽음을 구체화 시켜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죽음에 관해 막연하게 생각해 왔다. '암이나 불치병에 걸리면 너무 무섭겠지?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갑자기 죽는 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나의 죽음으로 남겨질 아이들과 남편을 떠올리며 슬픈 상상에 잠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도 찾아 올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고 죽음 후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단계별로 생각해 볼 점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뼈아대, '체인지 그라운드'에서 추천해 준 책이다. 의심 없이 구매했다. (다만 이 책을 추천하는 동영상의 내용은 보지 못했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람의 감동적인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에세이' 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과 함께 하는 감동은 나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까?"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달랐지만 나쁘지 않았고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책이었다.

표지에 나와 있는 부재대로 '죽음과 죽음에 관한 실질적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는 내용이었다. 작가 샐리 티스테일은 푸시카트 문학상 등을 받은 작가이며 완화의료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 (*완화의료: 환자의 신체 · 정신적 고통 완화에 대한 치료를 아우르는 포괄적 형태의 의료 행위, 임종이 임박한 환자는 물론 장기 치료가 필요하거나 투병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 환자와 가족에게 행해진다.) 자신의 환자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느낀 점이나,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알아야 할 내용, 태도, 결정 사항 등 죽음에 관련한 실질적 조언들이 담겨있다. 또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ir)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으로 더욱 크게 드러나는 삶의 소중한 가치가 그녀의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작가가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불교적인 사상과 가치관이 책 중간중간 많이 나온다.

다이닌 가타기리 선사
《침묵으로 돌아가라》 중에서 <p14>

"사기그릇은 언젠가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기그릇의 생명력은 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위태로운 아름다움. 우리의 고충이 여기에 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수 없어 고귀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산다. 
우리는 갖가지 재료로 화려하게 만든 조화보다 시들어버리는 생화를 좋아하고,
금세 떨어져 발길에 차이고 말 단풍을 일부러 찾아가 구경하며,
산기슭 너머로 저물어가는 석양을 넋 놓고 바라본다.
금세 사라지고 말 취약성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떠한 순간도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우리가 가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하듯 나의 순간순간, 나의 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나의 아이들, 남편과 가족들도 소중하게 대해 줘야겠다. 특히 아이들은 '엄마의 잘못된 말' 한마디로 깨어질 수 있는 연약하고 취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죽음에 관련해 생각 해 볼 주제들이 많이 있다. 결국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미리 생각하고, 준비 해 놓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준다.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중간 과정, 죽음에 임박했을 때와 사후의 모습까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또한 환자의 심리적 변화나 간병자와 가족들의 겪게 되는 어려움에 관한 조언뿐만 아니라 어떤 의료 기관과 의사를 선택해야 하는 지도 나와 있다. 다만 의료 기관과 의료 체계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많아 좋은 조언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p173> 죽어가는 사람에겐 의료와 간호의 상당 부분이 불필요해지지만 강제적으로 이어진다. 실험실의 검사 결과가 계획을 바꿔줄 것인가? 그렇다면 실행하지 마라. 왜 굳이 비타민을 더 복용하는가? 이 시점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말로 걱정되는가? 때맞춰서 꼬박꼬박 혈압을 재야 할까?
<중략>
제세동기와 산소 호흡기 같은 기계의 출현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혀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p174>"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 낼 때,
우리는 '플러그를 뽑는 것' 이 아니라 환자에게 죽을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과도한 기술과 침습적 치료에서 '환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죽을 자유를 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돌보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가능한 한 늦추고 싶어 한다. 엄마나 아빠가 '기계에 의지한 채' 살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다들 우리에게 얼른 결정하라고 다그치지만 우리는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전혀 없다.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읽고는 죽어가는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치료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 시행되는 과도한 수술과 연명치료(산소호흡기, 경관 영양, 항생제..... )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의학적 지식, 의료 행위와 병원시스템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의사와 병원이 권하는 데로 쉽게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제, 당연한 절차라는 듯 권하고 행해지는 중환자실에서의 연명치료를 오직 환자만을 위한 관점으로 바꾸어 선택하고 결정해야겠다. 그런 결정을 위해서는 미리 사전에 환자 본인이 원하는 연명치료 범위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겠다.

 

시인 마리 하우Marie Howe는 죽음의 순간을 어떤 것의 종료나 중단이 아닌 완성으로 여긴다. 삶의 총 결산인 셈이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맛보는, 피곤하지만 뿌듯한 느낌에 대한 영원한 기억이요, 예전엔 미처 몰랐던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리 하우는 <죽음, 마지막 방문>이라는 시에서 죽음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침내 / 누군가가 당신의 구두끈을 절대로 풀리지 않게 묶어주었다." 

나는 50년 전의 내가 아니다. 10년 전의 나도 아니고, 작년이나 어제의 나도 아니다. 나는 이 문장을 썼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내가 죽을 것인가? 모든 것이 ,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하는 이 순간은 그 어느 순간보다 미스터리하고 강렬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것만 같다. 후회와 고통이 가득할 것 같다. 죽음의 순간은 나에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데, 어떤 내가 되어 있어야 죽는 순간에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그 답은 중요 순서대로 착착 떠올랐다.

우선 내 아이를, 남편을 가족을 더 사랑해야겠다. 더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다. 죽음 앞에서 '사랑'보다 더 우선인 가치가 있을까? 후회 없이 진실되고 충만한 사랑을 더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회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는데 아직은 내가 너무 부족하다. 더 열심히 하자. 모든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자. 

세 번째. 봉사하는 삶을 살자. 직접 봉사하는 것만큼 내 삶을 감사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p23> 수행을 위해선 삶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며,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며, 아울러 언젠가 죽을 운명에 처한 고통받는 존재이다. 우리도 변하고 우리가 아끼는 것도 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변한다. 오래된 불교 명상법에선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본래 나이가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병이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죽을 운명이다. 나에게 소중한 전부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본래 변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p25> 세상 만물에 해당하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세상 만물이 변하듯 우리도 변하는 것일 뿐이다. 얼마나 놀랍고 멋진 일인가! 또 얼마나 가혹한가!

죽음이란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그 누구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더 이상 문제가 아니지만, 준비가 안된 상태로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일 것이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자.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지키고 발전해 가면서............... 오늘의 나로 죽는다고 할지라도 후회스럽지 않을 삶을 살아 나가야 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