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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_김정운

by 앤쏭 2019. 9. 11.

읽고 웃다가 보고 즐기다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든 책

<나만의 진정한 슈필라움을 가져야 나만의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정운 아저씨는 우리 남편이 참 좋아하는 작가이다. 이번 책이 나왔을 때도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샀다. 김정운 아저씨 책이 우리집에 다 있나? 하고 책장을 살펴봤더니 정말이지 다 있었다. 이번 책까지 6권의 책을 냈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남자의 물건'을 읽었는데 꽤 재미 있게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 남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여자들이 이해 할 수 없는 남자들의 '문제 행동(?)'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번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재미있게 읽고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한다'도 읽어 보았는데... 그 책의 서평도 써보아야겠다.

(김정운 교수님? 김정운 작가? 그런데 나는 왜 '김정운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은 걸까? 아마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 특유의 성인 농담 때문이겠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야한 농담을 이렇게 재미있게 잘 하는 사람은 연예인 중에서는 신동엽, 작가 중에서는 김정운 일 것이다. 어떤 이가 읽기에는 기분 좋지 않은 농담일 수 있겠지만....  난 그냥 성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김정운식 농담이 재미있다. ㅎㅎ)

그리고 이번 책을 읽으며 우리 남편이 왜 그렇게 김정운 아저씨 책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나보다 다섯살 연하의 남편은 제대로 놀아 본 적 없이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머 그럼 결혼 전에는 전혀 못 놀았냐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놀아보지 못했다고 표현해야 맞을까? 결혼 하면서 첫 취업을 한 남편은 자신이 번 돈을 자신에게 마음대로 여유있게 써 본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불쌍한 우리 남편 ㅜㅜ)

나만해도 결혼 전에 월급으로 여러 문화생활도 즐기고, 사고 싶던 물건도 사고, 배우고 싶은 것 배우고, 계획해서 저축하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보고....  어떤 달은 저축 한푼 못할 정도로 마음껏 써보기도 하며 '내 돈을 내 마음대로 누리는 삶'을 살다가 결혼을 했다. 남편은 이런 생활을 전혀 못해 보고, 첫 월급부터 외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며 아껴쓰는 생활을 해 온 것이다. 

경제적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가정적인 남편은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것 보다 아이들과 가정이 우선인 사람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사람이다. (에고....  서평을 쓰면서 우리 남편이 가엽고 고맙고 .... 그런 남편을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하고..... 남편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고 소중함을 느끼게 되네? 역시 독서는 좋은 것이야!!! ^^)

비단 우리 남편만 그럴까? 우리 남편 같은 상황이 아닐 지라도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이 자신만의 시간, 공간, 놀이에 대한 결핍이 많이 있다. 김정운 아저씨는 그런 우리나라 남자들한테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놀라고 한다.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자신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채 살고 있는 한국 남자들을 불쌍하다 말하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답답하게 여기며 구박하고 화도 낸다. ㅎㅎ

우리 남편이 그런 김정운 아저씨의 책을 가까이 두고 자주 꺼내어 읽는 것을 보면 남자들에게 깨달음이 많이 생기는 책인가 보다. 어떤 날은 위로도 되고 어떤 날은 힘이 되고 어떤 날은 용기도 주는 것 같다.  지금 여수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책읽기, 글쓰기, 그림그리기) 김정운 아저씨의 삶이 우리 남편이 미래에 그토록 원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섬세한 감성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와 성격도 취미도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여러 이유로 김정운 아저씨를 좋아하는가보다.

음.... 그런데 남편뿐만이 아니다. 김정운 아저씨...... 은근히 매력 있다. 나도 책을 읽다 보니 팬이 되었다. 아저씨의 삶과 생각과 즐거운 유머가 좋다. (특히 자뻑하는 글을 자주 쓰는데 너무 귀엽당 ㅋㅋㅋ ) 몇 일 전 태풍이 왔는데 남편과 나는 김정운 아저씨의 여수 바닷가 미역창고가 날아가지 않고 괜찮을까를 걱정하고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ㅎㅎ

이번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슈필라움(Spielraum, 주체적 공간)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

김정운 아저씨는 일본 미술 유학을 끝내고 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로 떠나 그림과 글을 쓰며 생활한다. 그러다 바다가 아름다운 여수가 너무 좋아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며 바닷가 외딴 섬에 자신의 슈필라움인 '미역창고(美力創考)' 작업실을 짓기 시작한다.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만의 슈필라움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한다.

이렇게 슈필라움을 꿈꾸며 살아 온 몇 년간의 삶을 <조선일보>에 '김정운의 여수만만 麗水漫漫'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였는데, 그 글을 모아 이 책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공간 뿐만 아니라 마음, 관계, 시간, 행복, 인생이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김정운 작가의 생각도 담겨있다.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여수의 아름다운 사진도 책의 중간 중간 담아 놓았는데, 그것을 보는 재미 또한 솔솔치 않다. 글과 그림 사진이 잘 조화를 이룬 '기분좋은 책' 이다.

에필로그 중에서<p 11>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 말로 내 아이덴티티다!"

지금까지 우리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자율의 공간 '슈필라움'의 가치를 너무나 무시하고 살아왔다. 공간이 있으면 '슈필라움'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비싼 인테리어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 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당신의 행복 따윈 아무도 관심이 없다<p109>

연속극 주인공의 취향에 내가 주목한 이유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돈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요즘 여수의 내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을 아침에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은 내게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 관심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p125 중에서>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 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다. 영상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는 일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다. 속기 쉽다는 이야기다! 책은 다르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그 옆의 빈 곳에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적는다. 밑줄을 긋고 빈 곳에 내 생각을 문자화하는 행위는 매우 성찰적이다.

'내가 왜 이 구절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라고 한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자기 성찰'의 메커니즘과 '밑줄 긋는 독서'의 메커니즘이 심리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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