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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균의 종말_서평1<인생책을 만나다. 모든 사람이 읽어 보기를 희망하는 책>

by 앤쏭 2019. 2. 21.


<<한줄평: 우리나라 교육 문제점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책>>


이 책은 내가 즐겨보는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추천하고 있는 필독서 였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써 그리고 이제 곧 학부모가 되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호기심이 들게 만든 제목이기도 했다.

책의 내용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지만 저자가 대부분 실제 사례와 과학적 실험 결과의 예시를 들어 설명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읽다보면 금방 이해가 되었다. 

저자 토드 로즈는 우리가 '평균'적으로 알고 있는 우등생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태하고 최저임금 자리를 전전하면서 공부해 결국은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의 교수가 되고 세계 최고의 교육학자가 됐다. 저자는 왜 자기가 고등학교 때 문제 학생으로 분류됐는지, 어떻게 공부의 '요령'을 터득했는지 스스로의 경험에 반추하면서 평균주의에 함몰돼 있는 교육과 평가 시스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은 1~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평균의 시대>는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2부 교육 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은 평균에 대한 의존을 대체 해 줄 '개개인의 과학'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개개인성의 중요 3가지 원칙인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설명하여 준다.

<3부 평균없는 세상>에서는 평균주의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서평을 쓰려니 내용이 하나하나 너무 중요하고, 간략하게 정리하다보면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길 것 같아 2개의 서평으로 나누어 쓰려고 한다.


평균의 종말_서평1에서는 <2부 교육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 3가지 원칙인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의 대한 중요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나의 아이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이 자리 잡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불합리한 세상인 평균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된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면 일단 나에 대해 알고, 인간만이 가진 개개인성이라는 3가지 원칙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

-버트런드 러셀, 영국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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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은밀한 독재

<p29>우리에게는 일평생 평균이라는 잣대가 졸졸 따라다닌다. 우리는 평균에 얼마나 근접한가, 또 평균을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평균적인 학생의 성적과 비교돼 등수와 등급이 매겨지고, 대학에 지원하면 등급과 시험 성적이 지원자 평균치와 비교당한다. 입사 지원 시에도 등급과 시험 성적만이 아니라 자질과 경력과 인성 점수까지 지원자 평균치와 비교된다. 취업이 되고 나서도 연례 평가로 해당 직무 수준에서의 직원 평균치와 대비돼 또다시 비교당하기 십상이다. 재정적 기회조차 평균 점수에서의 이탈 여부에 따라 평가되는 신용 점수에 근거해 정해진다.


<p31>앞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될 테지만 평균적인 신체 치수 따위는 없듯 평균적인 재능,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 같은 것은 없다. 평균적 학생이나 평균적 직원도 없고 그 점에서라면 평균적 두뇌 역시 없다. 이러한 일상화된 개념들 모두는 잘못된 과학적 상상이 빚어낸 허상이다. 평균적인 인간과 관련된 현대의 이런 개념은 엄밀한 진실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통념이며 150년 전에 유럽의 두 과학자가 당시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출해낸 발상이 그 시초였다.


<p32> 지난 10년 동안 나는 개개인학이라는 흥미롭고 새로운 이분야 융합 학문에 참여해왔다. 개개인학은 평균을 개개인의 이해를 위한 주요 도구로 삼길 거부하며 개개인을 이해하려면 개개인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는 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 들어 세포생물학자, 종양학자, 유전학자,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들이 이 새로운 개개인학의 원칙을 하나둘씩 채택하면서 세포, 질병, 유전자, 두뇌, 행동 등의 연구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기업 여러 곳에서도 이런 원칙을 도입해왔다. 실제로 개개인성의 원칙을 모든 영역에 차츰차츰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예외의 영역이 한 곳 있다면 이 원칙이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한 영역, 바로 '당신 자신의 삶'이다.

 내가 평균의 종말을 쓰게 된 동기도 이런 상황을 변화시기기 위해서다. 앞으로 여러장에 걸쳐 개개인성의 3원칙인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알려주겠다. 이 3원칙을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최신 과학 지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당신 자신만의 진정한 고유성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삶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당신의 개개인성을 온전히 활용할 방법까지도 알려줄 것이다. 제트기 시대에는 더 이상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항공기로 비행할 필요가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노르마'(미국 여성의 평균적인 신체 치수를 바탕으로 만든 조각상)에 당신 자신을 비교할 필요도 없다.


1. 들쭉날쭉의 원칙

인간의 재능은 다차원적이다


<p126>위의 사진에서 어느 쪽 남자의 체격이 더 클까?  언뜻 보면 답이 뻔한 것 같지만 두 남자를 각 항목별로 비교해보면 예상외로 답하기가 애매해진다. 오른쪽 남성은 키가 크지만 어깨너비가 좁다. 왼쪽 남성은 허리둘레가 비대하지만 엉덩이 둘레는 평균치수에 가깝다. 그냥 간단하게 남성별로 신체 치수의 9개 전체 항목을 평균 낸 뒤 어느쪽 남성의 체격이 더 큰지 정할 수도 있다. 단, 그럴 경우 각 남성의 평균 치수가 거의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두 남성이 체격이 똑같다고 말하거나, 둘 중 한쪽을 평균이라고 평가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오판인 셈이다.<중략>

 바로 여기에서 인간과 관련된 중요한 진실이자 개개인성의 첫 번째 원칙인 들쭉날쭉의 원칙이 부각된다. 이 원칙에서는 일차원적인 사고를 통해서는 복잡한데다 '균일하지 않고 들쭉날쭉한' 뭔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한다. 그렇다면 들쭉날쭉하다는 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다음의 2가지 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첫 번째, 반드시 다 차원으로 이뤄져 있을 것. 두 번째, 반드시 이 여러 차원들 사이에 관련성이 낮을 것. 들쭉날쭉성은 단지 인간의 체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재능, 지능, 성격, 창의성 등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이 들쭉날쭉하다.


<p136>위의 사진에서 어느 여성이 더 똑똑 할까? WAIS에 따르면 두 여성 모두 지능은 IQ 103점으로 똑같다. 그리고 두 여성 모두 IQ 100점으로 규정돼 있는 평균 지능에 가깝다. 결국 어떤 일자리에 가장 똑똑한 지원자를 채용하려는 상황이라면 두 여성에게 모두 똑같은 등급을 매길 만하다. 하지만 두 여성은 각자 지능의 강점과 약점이 확연히 다르며 따라서 이 여성들은 재능을 판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IQ 점수에 의존할 경우 확실히 오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구글의 인재 채용법

<p139> 구글 인사부 분석 업무 담당직원 토드 칼라일은 저 바깥에 구글이 놓치고 있는 수 많은 인재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품으며 몇개 안 되는 소수의 익숙한 기준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문제점의 하나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입사 지원자의 복잡한 면모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식으로 구글의 직원 채용 접근 방식에 변화를 주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았다.

검증 결과 SAT 점수와 출신 학교의 명성은 재능을 미리 예견케해주는 지표가 되지는 못했다.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의 우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적은 어느 정도 중요한 예견 지표였으나 그것도 졸업 후 3년 동안만 그러했다. "하지만 저나 구글의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놀랐던 부분은 따로 있었어요. 자료를 분석해 보니 구글의 대다수 업무 영역에서 단 하나의 변수가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니, 단 하나의 업무 영역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해야 맞겠네요."

다시 말해, 구글에서 재능을을 발휘할 만한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는 얘기이자 구글이 직원 채용을 최대한 잘하고 싶다면 그 모든 방식에 세심히 신경을 써야 했다는 얘기였다


"최종 채용자들의 이력서를 보면 도저히 그 직종에는 적임자가 되지 못하겠다고 말할 만한 경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단지 이력서만 보고 판단한다면........ 꼭 예스라고 말할 만한 점도 없는 이들이죠. 말하자면 그 최종 채용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왔던 그런 유형들입니다."


 조직에서 처음 들쭉날쭉성을 받아들이면 흔히들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굴할 방법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특이하거나 숨겨져 있던 재능을 알아볼 방법을 찾아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들쭉날쭉성의 원칙에서는 다른 관점을 갖는다. 우리가 간과된 재능을 알아본 것이라 해도 그 재능은 특이하거나 숨겨져 있던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재능이라고, 그동안 쭉 있어왔고, 들쭉날쭉한 특성을 가진 인간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재능이라고, 따라서 진짜 난제는 재능을 구별할 새로운 방법 찾기가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게 시야를 방해하는 일차원적 눈가리개를 제거하는 일이다. 물론 가장 시급하게 제거해야 할 눈가리개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때 들이대는 눈가리개들이다.


2. 맥락의 원칙

본질주의 사고 깨부수기

<p148> 당신은 외향형인가, 내향형인가? 언뜻 보기엔 간단한 이 질문은 사실 심리학에서 가장 해묵고 가장 논란 분분한 논쟁거리, 즉 성격의 본질이라는 문제와 결부돼 있다. 이 논쟁의 한쪽 편에는 특성심리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분야의 심라학자들은 우리 인간의 행동이 내향성이나 외향성과 같은 명확한 성격 특성들로 규정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략> 반면 또 다른 편에서는 상황심리학자들이 우리 인간의 성격은 개인적 특성보다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p151> 우리를 일련의 특성에 따라 평가하는 검사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성격에 대한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그런 특성들을 알면 그 사람의 '진짜' 정체성을 꿰뚫을 수 있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확신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다정한지 쌀쌀한지,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 깊숙이 은밀하게 내재돼 있어서 이런 성격 규정이 그 어떤 환경이나 업무에서든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믿음을 가리켜 본질주의 사고라고 한다.



<p159>지금부터 누군가의 상황 맥락별 기질을 알 경우 실질적으로 유용함을 잘 보여주는 쇼다의 연구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이 연구에서 웨디코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한 2명의 소년을 표준적인 공격성 척도 질문지를 활용해 평가해봤다. 그랬더니 두 소년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공격성을 나타냈는데 본질주의 사고의 렌즈를 들이대 해석할 경우 두 아이의 장래 전망은 비슷하며 비슷한 형식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식의 생각에 이를 만했다. 하지만 쇼다의 자료에는 감춰진 차이점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도 두 아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차이점이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한 아이는 또래들과 어울릴 떈 공격적이었으나 어른들과 있을 땐 온순했다. 반면 다른 아이는 어른들과 있을 땐 공격적이었으나 또래들과 있을 땐 온순했다. 두 아이의 공격성은 확연히 달랐지만 이런 중대한 차이를 특성 중심의 평가 방식에서는 간과했던 것이다. 공격성은 두 아이가 가진 성격의 '본질'이 아니었다. 단지 두 아이에게는 공격성을 띠는 상황과 공격성을 띠지 않는 상황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두 아이에게 모두 똑같은 평균주의식 꼬리표를 다는 것은 말 그대로 타격을 가하는 일이었다.




천성이란 없다.

성실성은 어떨까? 의리나 친절함은? 이런 것들은 우리의 타고난 성품일까? 아니면 맥락에 따라 변하는 성품일까?

<p165>위의 두 학생은 성실성 점수에서 평균이 비슷하게 나왔다. 오른쪽 학생은 속임수를 쓸 기회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한 경우만을 제외하고 비슷한 수준의 성실성을 일관되게 나타냈다. <중략> 한편 왼쪽의 학생의 행동은 용의주도할 정도의 성실함에서부터 뻔뻔할 정도의 속임수 사용에 이르기까지 여러 맥락에 걸쳐 큰 폭의 다양성을 보였다. 하지만 본질주의적 관점에서 성품을 판단하면 이 두 학생은 서로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성실성이 평균적으로 똑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맥락의 원칙에서 바라보면 이런 관점이 각 학생의 개개인성을 무시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도덕적 행동이 외부 상황에 따라 크게 특정되고 좌우된다는 학설에 대해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조니가 집에서는 성실한 아이인데 아이 어머니에게 그런 조니가 학교 시험에서 커닝을 한다고 얘기하면 그 어머니는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대중이 받아들이기 불쾌하더라도 이 상황 특정 학설은 잘 정립된 이론으로 여길 만하다.(중략) 성실성, 자비심, 협동심, 억제력, 끈기는 일반적 특성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습성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위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현재도 부모들과 교사들은 여전히 도덕성은 개인적 특성이며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한다. 자제력이 아이들의 성공적인 삶을 위한 핵심이라고 주장해 부모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연구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자제력의 중요성을 옹호할 때 특히 자주 인용되는 한 연구는 우리 세대의 가장 유명한 심리학 연구라 할 만한 일명 '마시멜로 연구'다.

맥락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자제력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실제로 셀레스트 키드 라는 과학자는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대중의 판단에는 맥락이 간과돼 있음을 간파해냈다.

<p169>키드는 중대한 변형을 가미한 독자적인 방식의 마시멜로 연구에 착수했다. 한 그룹의 아이들은 '신뢰할 만한' 상황 속에 놓이게 하고 또 다른 그룹의 아이들은 '신뢰하기 힘든'상황 속에 놓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실험결과, 신뢰할 만한 상황군의 아이들은 이전에 실시됐던 다른 마시멜로 연구과 아주 흡사한 행동을 보였다. 몇몇 아이는 금세 유혹에 넘어갔으나 3분의 2에 가까운 아이들이 최대 한도인 15분이 지날 대까지 기다렸다. 반면에 신뢰하기 힘든 상황군의 아이들은 아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중 절반이 어른이 나가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마시멜로를 1개 더 받을 수 있을 만큼 진득하게 참은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자제력은 일종의 본질적 특성처럼럼 여겨지지만 키드가 증명했듯이 자제력 역시 맥락적인 것이다.


재능과 맥락의 조화

<p170>마시멜로 실험과 자제력이 성공의 열쇠라는 식의 그 실험 결론이 드러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본질주의 사고에 크게 구속돼 있는 한 영역, 즉 능력, 재능,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우리는 이런 자질들을 본질적 자질이라고 여긴다. 개개인별로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환경을 재능 같은 것에 미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 재능을 좌우하지도 재능을 싹틔우지도 못한다고 말이다.

이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바로 직원 채용 방식이다. 직무의 최적임자를 찾는 문제에 관한 한 기업계의 모든 시스템은 맥락을 무시하도록 짜여 있으며 그 초반 과정부터 지극히 본질주의적인 채용 도구를 내세운다.

<p172>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직원의 '본질'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직원이 수행해야 할 직무의 수행력과 그 직무 수행이 행해질 맥락에 주목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실제로 그런 방법을 개척해낸 인물이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채용 컨설팅사인 루 애들러 그룹의 창설자 루 애들러다.

애들러는 직장을 맥락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착안해 그 자신의 표현처럼 "수행력 기반의 채용"이라는 새로운 직원 채용법을 개발했다. 그는 고용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수행되기를 바라는 직무에 대해 우선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커뮤니케이션 능통자가 필요하다는 말들을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직무 설명서에 가장 흔히 기재돼 있는 기량이죠. 하지만 다방면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능통자' 같은 건 없습니다. 특정 직무에 필요할 만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것이지, 그 모든 방면에서 능통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담당자의 경우라면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고객의 문제를 이해할 만한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능력이다. 회계사에게는 고위 임원에게 영업 적자가 수익에 끼치는 영향을 잘 설명하는 능력일 것이다. 애들러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의 수행을 위해서는 이러한 맥락적 세부 사항들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3. 경로의 원칙

이정표 없는 길을 걷는다는건

<p185>걷기는 정상적인 경로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그 가정은 너무 직관적이고 명백하게 여겨져서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캐런 아돌프라는 이름의 여성 과학자였다. <중략> 아돌프와 동료들은 연구 중의 한 조사에서 28명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기어 다니기 전부터 걸음마를 떼는 날까지의 발달 과정을 추적 관찰한 뒤 '분석 후 종합' 방식을 활용해 자료를 검토했다. 그 결과, 기어다니기에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아기들은 무려 25가지의 다양한 경로를 따랐는데 각 경로마다 독자적 동작 패턴을 띠었고 모든 경로가 걷기로 발전했다. 한예로 '배밀이'는 기기의 필수적인 단계여서 아기들이 걸음마를 떼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단계라는 것 이 오래된 믿음이었으나 아돌프가 조사한 아기들의 절반 가까이는 배밀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인간의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이든, 혹은 정신적, 도덕적, 직업적 등등의 발달이든)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 없으며 이 사실은 개개인성의 세 번째 원칙인 경로의 원칙에서 근본을 이루는 토대다.

경로의 원칙은 다음의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번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도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는 거짓말

<p193>블룸의 연구진은 무작위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 모든 학생들은 '가능성 이론'같은 처음 접하는 과목을 배웠다. 첫번째 그룹은 '고정 속도형 그룹'으로 전통적 방식으로 수업 내용을 배우면서 고정된 지도 기간동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두 번째 그룹은 '자율 속도형 그룹'으로 수업 내용과 총 지도 시간은 첫 번째 그룹과 똑같은 조건이었으나 자율적으로 학습 진도를 나가도록 허용하는 교사에게 지도를 받아서, 학생들이 경우에 따라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조절하면서 새로운 개념마다 학습 시간을 필요한 만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블룸이 각 그룹의 성취도를 비교해 봤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따. 전통적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성취도는 빠를수록 똑똑하다는 신념 기준으로 예상될 법한 딱 그 수준이었다. 지도 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이 그룹은  약 20퍼센트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블룸이 정한 기준상으로 최종 시험에서 85퍼센트 이상의 득점을 올린 수준)이고 그와 비슷한 비율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그 나머지인 대다수 학생은 중간쯤의 수준이었다. 반면에 자율 속도형 학생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

블룸이 증명해냈듯, 학습 속도에 약간의 유연성을 허용한 결과 대다수 학생들이 아주 뛰어난 성취도를 나타냈다. 또한 블룸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의 개인별 다양한 속도는 학습 내용에 따라 결정됐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분수 부분에서는 거침없이 뚝딱 해치웠지만 소수부분에서는 애를 먹는가 하면 또 다른 학생은 소수 부분은 후딱 뗐지만 분수 부분에서는 추가 시간이 필요한 식이었다. '빠른' 학습자나 '더딘' 학습자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이러한 연구를 통한 논리적 결론은 명백할 뿐만 아니라 유감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고정된 속도의 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수많은 학생의 학습 능력과 성취력을 인위적으로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속도의 조절을 허용한다면 대다수 사람들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 구조는 그런 개개인성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학생들 모두의 잠재력과 재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


발달에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라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저마다 발달의 그물방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각각의 새로운 단계마다 우리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 온갖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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